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ㅅ계 합용병서 (문단 편집) === 근대 한국어와 그 이후 === 이러한 의견 대립은 15~16세기 음가에 국한되고 있으며, [[근대 한국어]] 시기에는 된소리로 발음되었다. 어두자음군은 늦어도 근대 한국어 전에 모두 소멸한 것으로 보인다. 조선 후기에는 ㅅ계 합용병서가 된소리를 표기하는 데 주로 쓰이고, 오늘날 된소리를 표기하는 데 쓰이는 각자병서는 도리어 잘 쓰이지 않았다.[* 조선 초기 당시 한자의 발음을 정리, 명시한 [[홍무정운역훈]](洪武正韻譯訓), [[동국정운]](東國正韻)에서 각자병서가 한자의 전탁음(유성음)을 표기하는 데 쓰였다.] 한글 창제 초기에는 각자병서 표기가 보이다가 [[원각경언해]](1465)에서 급격히 빈도가 낮아지는 현상이 보이기에, 지침상 각자병서를 폐기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. 왜 'ㅅ'이 된소리 표기에 쓰였는지에 대해서는 직관적으로 와닿지는 않으나, [[사이시옷]]에서도 보듯 'ㅅ'이 오랜 세월 동안 선행음절의 [[불파음|폐쇄]]를 표기하는 용도로 쓰인 것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.[* 이 현상은 16세기를 지나 음절말 [s\]이 소멸하고 음절말 [t̚\]로 통합된 뒤(음절말 'ㅅ'과 음절말 'ㄷ'이 같은 소리를 나타내게 됨) 음절말 [t̚\]의 표기로 'ㄷ'이 아닌 'ㅅ'를 사용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났다. 음절말 [t̚\]의 'ㅅ' 표기는 17~18세기 경 [[일본어]] 역학서 류에서 처음 나타나기 시작하는 경향성을 보인다. 어째서 'ㄷ'이 아닌 'ㅅ'을 주된 표기로 사용하게 됐는지 이유는 알기 어렵다.] 초성에서의 [s]가 아니라 종성의 [t̚]를 표기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잇따르는 자음이 된소리가 되는 것도 자연스럽다.[* 20세기 초 [[지석영]]은 "원래 'ㄸ'처럼 각자병서를 써야 하는데 [[〃]] 같이 한자에서도 자주 쓰는 [[반복 부호]]를 'ㅅ' 비슷하게 쓴 것이다"라고 주장하기도 했다.] 근대에 박승빈은 이 때문에 도리어 각자병서보다는 ㅅ계 합용병서를 쓰는 것이 음운론적으로 자연스럽다고 하였다. ㅅ계 합용병서를 쓰면 '냇가' 같은 [[사이시옷]] 표기의 발음을 적을 때 [내ᄭᅡ]가 되는데, 표기상으로 선행음절 종성 'ㅅ'이 초성으로 옮겨간 것처럼 보여 자연스럽다. 다만 ㅎ이 이와 유사하게 [[거센소리]]화 역할을 한다고 해도 거센소리가 된 그 음소를 'ㅎㄷ' 식으로 적지는 않는 것처럼, 사이시옷이 경음화를 일으킨다고 해서 경음화된 음소를 ㅅ과 함께 써야 할 필연적인 당위성은 없다. 'ㅅ+ㄷ'이 합쳐져 'ㄸ'라는 음소가 되었다고 해석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.[* 박승빈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불파음 - 경음화의 틀로는 해석하기 어려운 'ㄹㄹ'까지 'ㅅㄹ'로 표기하였는데 이는 더욱 음운론적 근거가 떨어진다.][* 특이하게도 일본어에서 간혹 박승빈의 주장과 유사한 표기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외국어의 /l/발음을 표기하려 원래 /r/에 가까운 발음을 나타내는 ラ행 앞에 위의 'ㅅ'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'ッ'을 덧붙이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. 'ッ'를 단순한 입성(-k, -t, -p)이 아니라 후행하는 자음의 [[중복 자음|복자음화]](-kk-, -tt-, -ss-, -pp-, -ll-) 같은 개념으로 보는 것이다. 예를 들어 [[이슬람]]의 최고신인 [[알라]]를 'アラー'(아라)가 아니라 'アッラー'(앗라)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다. 이런 표기는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한 외래어 표기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.] 근대 시기(19~20세기)에는 된소리의 표기로 각자병서와 ㅅ계 합용병서 둘 중 무엇이 타당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열띠게 벌어졌다. [[한국어/맞춤법/역사|맞춤법의 역사]]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엎치락뒤치락하였다. 조선 중후기에는 주로 ㅅ계 합용병서가 관습적으로 우세하였으나 맞춤법을 제정해나가는 과정에서 《[[훈민정음]]》에서의 세종의 의도를 생각하면 각자병서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우세해지게 되었다. 최종적으로 각자병서를 쓰는 것으로 명문화된 것은 잘 알려진 1933년 [[한글 맞춤법 통일안]]에서이다. [[일제강점기]]까지도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 등이 ㅅ계 합용병서를 표준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근대 초기의 문헌들은 ㅅ계 합용병서를 쓰는 일이 많다. 그 유명한 김소월의 [[진달래꽃]] 역시 원문은 '꽃'이 아니라 'ᄭᅩᆺ'이다. [[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]]에서 제공되는 20세기 초 [[동아일보]] 기사도 입력이 각자병서로 되어 있어서 그렇지[* 그밖에 [[ㆍ]]가 일괄 [[ㅏ]]로 변환되어 입력되어있다.] 본문을 확인해보면 ㅅ계 합용병서인 것들이 많다. [[한글 점자]]에도 ㅅ계 합용병서의 흔적이 남아 있다. [[된소리]] 'ㄲ', 'ㄸ', 'ㅃ', 'ㅆ', 'ㅉ'의 초성을 적을 때에는 같은 초성을 두 번 적는 것은 아니라 초성 'ㅅ(⠠)'을 'ㄱ', 'ㄷ', 'ㅂ', 'ㅅ', 'ㅈ' 앞에 붙여 'ㅺ', 'ㅼ', 'ㅽ', 'ㅆ'(각자병서), 'ㅾ'으로 적는다. 초성이 아닌 종성에서는 받침 'ㄲ'을 받침 'ㄱ' + 받침 'ㄱ'으로 적는 것과는 대조적인데, 초성 된소리와는 달리 'ㄲ' 받침은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제정되고 나서 'ㄲ'이라는 철자로만 쓰이기 시작했기(즉 'ㄲ' 받침은 'ㅺ'으로 적힌 역사가 없기) 때문이다. [[분류:옛한글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